헤라클레이토스
3.1 헤라클레이토스
밀레토스 학파나 피타고라스학파는 '궁극적인 구성 요소'를 이해하고 싶었다. 헤라클레이토스는 '변화'에 집중했다. <당신은 같은 강물로 두 번 걸어 들어갈 수 없다> '변화'는 영원한 것이다. '유전flux'는 모든 사물, 영혼의 공통적인 특징이다. 그런데 모든 것은 '변화'하면서도 '동일성'을 유지한다. 강은 계속해서 새로운 물이 흐르지만 그 강은 '같은' 강이다. 철수는 꼬꼬마에서 어른으로 변하지만 그는 여전히 '같은' 철수다. 모든 것들은 시간에 따라 다양한 모습을 취한다. 하지만 지속적인 요소를 가진다.
3.1.1. 유전과 불
변화하는 어떤 것이 존재한다. (이 말은 '컵'이 존재한다는 말인가? 아니면 일반 사물 전체에 관한 이야기인가?)
사물의 근본적 원소가 존재한다. 이것은 '불'과 같다. 불은 변형의 과정을 잘 보여준다. 불이 일어나려면 무언가가 필요하다. 가령 나무가 필요하다. 불은 나무를 태우면서 열과 연기를 일으킨다. 그리고 나무를 검은 재로 만든다. 즉, 불은 무언가를 빨아들여서 무언가를 방출하고 무언가를 변화시키는 과정이다. 확실히 '불'은 '물'보다는 세계의 근본 원소로 이해하는데 더 적절하다. 왜냐하면 세계는 다양한 사물 뿐만 아니라 변화하는 모습도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세계는 불의 과정 속에 있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한가? 헤라클레이토스는 두 가지의 전제를 상정해야 했다. 첫째, 불은 흡수한 만큼 방출한다. 둘째, 불이 일으키는 변화는 두 개의 반대되는 방향으로 일어난다. 이 두 가지의 전제로부터 세계가 변화하는 동시에 유지되는 모습이 설명된다.
일자the one는 불이다. 여기서 일자는 '하나'의 의미가 아니라 '전체'의 의미다. '우리는 하나다'가 의미하는 바는 우리가 전체로서의 하나라는 의미이다. 일자는 '구'라고 했다. '구'는 '동등함'과 '꽉 참'을 의미한다. 한 점에서 일정 거리 떨어진 모든 점들의 집합이다. '구'는 형이상학적 세계를 의미한다. 한편 다면체는 형이하학의 세계를 의미한다. 일자가 불이라는 것은 1)부단한 운동성과 2)존재 양은 일정하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함이었다. 일자가 물질이라는 의미가 전혀 아니다.
3.1.2. 보편 법칙으로서의 이성
세계를 유지하고 변화시키는 '불'의 원리는 신의 보편 이성logos의 산물이다. (이것은 다음 중 어느 질문에 대한 대답인가? "불의 원리는 어떻게 가능한가?", "불의 원리는 왜 존재하는가?" "변화의 대상인 인간의 정신은 어떻게 가능한가?") 모든 사물, 인간은 로고스의 원리에 의해 변화하고 유지되기 때문에 그것들 모두 신의 보편 이성의 특징을 가진다. 신이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물 안에 내재한다. 따라서 어떤 개별자들은 사유 활동이 가능하다.
따라서 인간은 사유활동이 가능한 한에서 동일한 지식의 줄기를 공유한다. 또한 사물들은 모두 중력의 원리를 따른다. 그런데 인간은 생각이 없거나 무지한 상태에 빠지는 순간이 많다. 따라서 인간은 서로 반목할 때가 많다. 헤라클레이토스도 인간의 '반목성'을 알고 있었지만 이것을 일으키는 '무지 상태'가 어떻게 가능한지 해명하지 않는다. 이러한 설명력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모든 사람이 동일한 로고스를 공유한다>는 아이디어는 '세계시민주의'의 근거가 되는 등 이후 철학자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자연은 신적인 것을 드러낸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것이 범신론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범신론이란 <신 = 자연, thing>, <자연 그 자체가 신적인 것>을 말한다. 하지만 이로부터 <자연은 신적인 것을 드러낸다>는 주장이 필연적으로 뒤따라 나오는 것은 아니다. 초월적 신은 존재를 가정하고 이러한 신이 카오스(non being과 비슷한)적 세계에 질서를 부여하여 코스모스적 세계를 만들어냈다고 하자. 이 때 코스모스적 세게와 신은 따로따로 존재한다. 하지만 이 경우 신적인 것은 자연에 본인을 드러낸다고 볼 수 있을 것이고 <자연은 신적인 것을 드러낸다>도 참일 수 있다. 이성nous는 질서의 원리이다.
다음으로 헤라클레이토스의 '철학적 태도'를 살펴보자.
"자기를 아는 것과 사려하는 것이 모든 인간에게 부여되어 있다."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 단편 233쪽)
"나는 나 자신을 탐구했다"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 단편 235쪽)
"잠에서 깨어난 사람은 대개 하나의 질서 있는 세계를 발견한다" 36쪽
자기 관조와 반성의 태도를 엿볼수 있다.
3.1.3. 대립자의 투쟁
인간은 사건들을 선과 악으로 나누기도 하고 사건들 간에 서로 모순적이라고 느낀다. 하지만 앞선 절에서 전제한 것처럼 세계 전체는 소멸 없이 각각의 모습들이 변화할 뿐이다. 따라서 인간에겐 서로 모순적으로 보이는 사건들과 선 또는 악으로 보이는 힘들은 세계 전체의 입장에선 사실상 그렇지 않다(조화롭고 당연한 것이다). 우리가 늙는 것도 세계의 원리에 따른 것이기 때문에 안 좋은 게 아니다. (늙는 것이 맞는거고 당연히 그렇게 되야 하는 것으로 우리는 늙는 것을 막을 수 없다. 하지만 늙는 것을 충분히 슬퍼할 수 있고 이러한 감정은 우리로 하여금 개인 또는 인류의 늙음을 지연시킬 수 있게 만든다.)
"대립자 간의 투쟁은 단순히 한때의 불행이 아니라 만물의 영원한 조건이다" (p37)
현상 세계는 정의, 평화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말하는 듯하다. 헤라클레이토스에게 초월적 신은 존재하는데 그러한 신이 생각하는 선/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우리 인간들로선 상상도 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