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테일러, 윤리학의 기본원리 제1장
S1 윤리학과 도덕
윤리학이란 “도덕이란 무엇인가?”, 또는 “어떤 사람이 p가 도덕적이라고 진술할 때 근거가 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따위를 묻고 답하는 활동이다. 도덕이란 “~하는 것은 옳거나 그르다”는 도덕적 판단, 표준standard, 규칙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때 도덕은 현실 세계에 대한 것 뿐만 아니라 이상적인 세계에 대한 것도 포함한다. 윤리학의 주요 목표는 과연 어떠한 도덕적 판단이라도 확실한 근거를 가질 수 있는지 해명하는 것과 그 근거는 무엇인지 밝히는 것이다.
도덕은 어떤 행동이 옳거나 그르다고 판단내리는 것은 물론 무엇이 좋고 나쁨도 판단한다. 도덕 판단moral judgement은 어떤 행동과 이를 이끈 동기, 이유 뿐만 아니라 기본적 성품에 대해서도 관여한다.
행동, 동기, 성품에 대해 판단내릴때 우리는 도덕규범을 그 기준으로 한다. 도덕규범이란 행위의 규칙 또는 표준이다. 규칙은 주어진 상황에서 '~해야 한다/하면 안된다'는 권고이며 표준standard은 '~은 좋다/나쁘다', '~은 가치 있다/없다' 등과 관련된다. 어떤 행동 -이를테면 거짓말- 은 개별 상황에 따라 결과적으로 '좋은 행동'일 수도 있고 '나쁜 행동'일 수도 있다.
사람들의 동기, 성품에 도덕 판단이 적용될 때는 규칙이 아니라 표준을 따른다. 이 경우는 행동의 결과와 행동 그 자체가 아니라 이것을 한 의도를 평가한다.
도덕 판단의 근거가 되는 행위의 규칙이나 평가의 표준은 각각의 개인이 속한 사회에 존재하는 관습과 필연적으로 관계하진 않는다. 개인은 관습에 대해 비판적으로 수용하여 자신만의 윤리 체계를 가질 수도 있다. 여하간 개인이 수용한 윤리 체계는 그 자신의 행동에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어떤 사회의 사람들이 일련의 행위 규칙과 평가의 표준을 따를 때 우리는 그러한 규범을 한 문화권 내에서 공유된다고 말한다. 규범은 관습, 법률로 나타나며 사람들에게 도덕적 권고로 받아들여진다. 이 규범은 사람들을 제재한다. (요약자는 '제재를 가한다'를 '심리적으로 압박한다'고 표현하고 싶다)
도덕적 표준과 기준은 실제 생활에서 행동의 지침 역할을 한다. 우리는 어떤 사회가 특정 행동을 도덕적으로 어떻게 평가하는지 관찰함으로써 그들이 현실적으로 어떤 도덕 규범을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이처럼 실제 세계에 존재하는 도덕 규범이 무엇인지 알아보는 일 뿐만 아니라 이상적인 도덕과 관련된 작업 –우리는 실제로 행해지는 도덕의 정당성, 타당성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일—또한 윤리학이 다루는 것들이다.
S2 기술윤리학, 규범윤리학, 분석윤리학
현실적인 도덕을 연구할 때 우리는 구체적인 데이터들--도덕 판단, 표준, 규칙--을 과학적 또는 철학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 먼저 과학적으로 연구한다는 것은 위의 데이터들을 이끈 경험적 사실들을 과학적 절차대로 열거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연구는 미시적 또는 거시적으로 수행 가능하다.
개인에게 있어 "도덕적 의식"은 그가 가질 수많은 감정들, 동기들에 영향을 끼친다. 생각, 태도, 욕구 형성에도 마찬가지다.
개인의 실제 삶에 영향을 끼치는 현실적 도덕은 과학적으로 연구 가능하다. 개인이 가진 현실적 도덕은 그가 내린 도덕 판단들을 기술함으로써 알 수 있다. 또한 이 도덕 체계를 얻게 된 원인도 알 수 있다. 심리학이 이 작업을 수행한다.
현실적 도덕에 대한 거시적 연구는 인류학자, 사회학자, 역사학자 그리고 사회심리학자들로부터 행해진다.
현실적 도덕에 대한 과학적 연구를 기술 윤리학이라고 부른다.
철학자들이 현실적 도덕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는 이것이 이상적 도덕으로의 출발점이 되기 때문이다. 철학자들의 역할은 어떤 개인이 가지는 도덕 체계를 기술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도덕 체계 사이의 논리적 관계를 파악하고 일반적 도덕 체계를 구현하는 데 있다.
철학자들은 현실적 도덕을 단지 자신의 도덕 체계에 대한 사고를 확장시켜주는 발판으로 삼는다. 철학자들의 이상적 도덕은 현실적 도덕 연구에서 발생하는 모든 문제들을 토대로 세워진다.
철학자들의 이상적 도덕은 하나의 일관된 체계이다. 이러한 일관된 체계를 규범윤리적 체계라 하며, 철학의 역할은 이것이 어떻게 가능한지 밝히는 것이다. 이 활동을 규범윤리학이라 한다.
규범윤리학의 목표는 구체적인 도덕적 신념을 기술하는 것이 아니라 도덕적 신념의 진위 여부를 밝히는 것이다.
도덕철학은 두가지로 분류되는데, 하나는 규범윤리학이고 다른 하나는 분석윤리학 또는 메타윤리학이다.
분석윤리학의 목적은 도덕적 논증의 의미론적, 논리적, 인식론적 구조를 명백히 파악하는 것이다. 의미론적 탐구는 윤리학에서 나오는 단어, 문장의 뜻에 대해 따진다. 논리적 탐구는 윤리학의 논증에 있어 문장들 간의 관계가 어떠한지 따진다. 인식론적 탐구는 윤리적 판단, 문장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그리고 이것들이 어떻게 얻어지는지를 따진다. 윤리적 판단과 문장 중 많은 부분은 어떤 논증을 통한 결론이기 때문에 인식론적 탐구는 논리적 탐구와 밀접하게 관련된다. 따라서 분석윤리학의 과제는 두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윤리학에서 나타나는 용어들의 의미를 추적하는 것이다. 둘째, 윤리학적 논증의 추론 규칙과 인식론적 방법을 탐구한다.
분석윤리학의 의미론적 탐구는 도덕 언어 --"옳다", "좋다", "~해야 한다"--가 윤리학에서 어떻게 쓰이는지 알아내는 것이다. 도덕 언어는 도덕 문장을 표현하고 자신과 타인의 행동을 규정하며 동기, 성품을 평가할 때 쓰인다.
분석윤리학의 논리적 탐구는 윤리적 논증의 규칙을 파악하는 것이다. 인식론적 탐구는 과연 도덕적 진리가 존재하는지의 여부 그리고 존재한다면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지에 대한 해명이다. "도덕적 진술은 검증 가능한가?"도 이 탐구에 있어 나올 수 있는 질문이다.
분석윤리학과 규범윤리학의 논리적 관계는 전자가 후자에 있어 선행한다는 것이다. 어떤 철학자가 윤리 체계를 만들고 이것이 만인에 있어 정당하게 구속력을 가진다고 주장하는 것은 규범윤리학이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 이전에 "정당하게", "구속력" 등의 존재와 가능한 이유에 대한 탐구는 선행된다. 21세기 전의 철학자들은 이 두 작업을 분리해서 진행하지 않았다. 따라서 이들의 작품을 독해할 때는 "지금 필자가 하려는 작업은 자기가 세운 윤리 체계의 정당화하려는 것인지 또는 정당성의 의미를 파악하려는 것인가?" 따질 필요가 있다.
S3 관습적 도덕과 반성적 도덕
개인은 자신이 속한 사회가 제시한 도덕을 비판 없이 수용할 수도 있다. 이러한 상황 에 대해 그는 관습적 도덕을 받아들였다고 한다. 이러한 사람들은 살면서 자신의 도덕 관념과 모순되는 관념을 가진 사람들과 마주칠 수밖에 없다. 이때 이들은 충격을 받으며 도덕에 대한 회의주의적 태도를 취하게 쉽다. 이런 식으로 사는 것은 도덕 없이 사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도덕적 독단론이나 회의주의적 태도는 윤리철학이 올바르게 이루어질 때는 발생하지 않는다. 도덕적 독단은 개인이 속한 사회에 대한 맹목적 추종에 의한 결과다. 도덕적 회의론은 개인의 심리적 요소--여기에선 불안--가 지성적 견해에 영향을 끼친 것으로, 비이성적 판단의 결과다.
개인의 도덕적 성장은 자신의 도덕 추론을 이성적으로 행할 수 있는 자질을 요구한다. 도덕적으로 성장한 사람은 여러 사회가 제시하는 도덕 규범을 이성적으로 분석할 수 있다. 그는 자신이 처음 마주치는 도덕 규범에 대해 기겁하거나 감동하지 않고 그것의 일관성을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도덕적으로 성장한 사람은 비판적 사고능력 때문에 자신이 속한 사회가 제시하는 도덕 규범을 오로지 자신의 이성에 의지해서 선택적으로 수용하고 거부한다. 그리하여 그는 개인주의자가 된다.
개인이 관습적 도덕론자에서 반성적 도덕론자가 되는 과정에는 윤리학이 있다. 윤리학은 도덕에 대한 철학적 탐구다. 분석 윤리학은 개인의 도덕적 사고가 분명하고 타당하게 되도록 이끈다. 규범 윤리학은 도덕적 사고가 보편적인 것이 되도록 이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