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리학/Summary

'마음 쓴다' by H.Frankfurt

달빛이내린다 2019. 1. 11. 23:42

1. 어떤 대상이 본래적 가치를 지닌다고 해서, 우리가 그 대상에 마음 쓰는것은 아니다.

  우리는 무엇에 마음 쓰는가? 프랭크퍼트에 따르면, 우리가 마음 쓰는 일은 일반적으로 '본래적 가치intrinsic value' -도덕적 가치든, 도덕과 무관한 가치든-를 지닌 대상과 일치하지 않는다.

  무엇이 그 자체로 가치있는지, 또는 어떤 행위가 도덕적인지에 대해서 우리는 믿음을 가진다. 우리는 현재 발매되는 책, 음악들 대부분이 고전들보다 구리다는 것을 안다. 평소에 트와이스를 즐겨듣는 사람(진영)이 있다고 가정하자. 만약 진영의 감성능력이 덜떨어지지 않았다면 그는 트와이스의 음악이 베토벤보다는 상대적으로 구리다는 것을 알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트와이스를 들을 것이다. 이는 트와이스가 베토벤보다 가치있기 때문이 아니다. 베토벤이 트와이스보다 가치있다는 것을 (누군가가 가르쳐 주었기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감성 평가 기준에 따라 알았다 하더라도) 베토벤보다 트와이스를 듣고 싶어할 수 있다. 트와이스에 꽂힌 진영이 매일 트와이스의 곡을 듣는다고 가정하자. 진영이 '그래도 베토벤이 트와이스보다 가치있다'는 믿음에 따라 베토벤을 듣는다면, 그 감상을 통해 베토벤의 가치를 재확인할 것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는 만족감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

  진영이 단지 취미로의 음악 감상을 목적으로 트와이스에 꽂힌 것이 아니라고 가정하자. 그는 클래식을 전공한 -이를테면 피아노학과라 하자.--사람으로, 클래식을 듣고 연주하며 그것의 가치를 충분히 인지했다. 하지만 그는 대중음악에 꽂혀, 최근에는 트와이스를 매일 들으며 그와 같은 대중가요를 작곡하고 싶어한다. 이 사람은 계속해서 클래식에 열중할 수 없다. 즉, 클래식을 계속 하며, 자기 자신과 일치함을 느낄 수 없다.  그는 클래식에 종사하도록 자신의 진로와 환경을 선택할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클래식이 대중음악보다 가치있다'는 믿음을 계속해서 상기하지 않는 한, 그는 자신의 작업에 열중할 수 없다. 즉, 그의 정신은 성의 있지wholehearted 않다.


2. S가 무엇을 욕구한다고 해서, S가 그것에 '마음 쓴다'고 말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우리는 생채기가 생기는 것을 원치 않는다. 따라서 우리는 생채기가 생기는 행동들을 가능한 꺼릴 것이다. 그렇지만 일반인들은 생채기 피하는 일 따위에 마음 쓰며 살지는 않는다. 정말로 생채기 피하는 일에 마음 쓰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무척이나 소심한 사람이거나 생채기 강박증에 걸린 사람일 것이다. 


3. '마음 쓰는 대상'과 '사랑의 대상'의 구분 가능성


사례S는 인문대에 입학하고 기타를 취미로 배우기 시작했다. S는 매일마다 기타연주를 하고, 자신의 기타 실력을 향상시키는 일에 마음 쓰게 되었다. 그는 전업 기타연주자가 되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기타연주에 마음을 쓰며, 다른 직업이나 활동보다도 그 일을 사랑한다. 전업 기타연주자가 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라고 판단한 그는, 생활비를 벌고 독립을 하기 위해 모 회사의 영업사원으로 취직한다. 그런데 매일 밤 야근으로 인해 기타연주를 할 시간을 너무 많이 뺏기고 있다고 S는 판단하게 된다. 이로 인해 S는 기타 연습을 위한 시간 확보에 용이한 공기업으로 이직을 희망한다.

위 사례에서 S는 '기타 연주와 기타 실력 향상'에 마음 쓴다고 말할 수 있다. 물론 S는 '공기업 입사'에도 마음 쓴다. 하지만 후자의 경우는 S가 기타연주에 마음 쓰는 것과는 질이 다른 마음 씀이다. S가 '공기업 입사'에 마음 쓰는 핵심 이유는, 공기업에 입사함으로써 '기타 연주'와 관련된 목적을 성취함에 있다. 이처럼 공기업에 입사하는 일은 S에게 그 자체로서의 목적이 아니라, 다른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서 마음 씀의 대상이다. S가 공기업으로 이직했는데도 여전히 야근을 해서 기타연주를 할 시간이 없다면, S는 공기업 입사를 원하지 않을 것이다. 이처럼 S가 '기타 연주'에 마음 쓰는 것과 '공기업 이직'을 희망하는 것은 질이 다르기 때문에 표현에 있어서도 구분이 필요하다.

 S에게 '기타 연주'는 '공기업 입사'보다도 (상대적으로) 대체될 수 없는 대상이다. 과연 S에게 '기타 연주'가 대체될 수 있을지 여부는 일반적인 수준에서 판단하기 힘들다. S에게 '기타연주'는 음악적 활동을 위한 수단이었다면, 그에게 기타연주는 다른 음악활동으로 대체되기 쉬울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단지 사고실험으로 판단할 사안은 아니다(나는 이것에 대해 쉽게 말하고 싶지 않다). 반면에 S에게 있어 '공기업 입사'는 순전히 수단이기 때문에 언제나 대체될 수 있는 '마음 씀'의 대상이다. '기타 연주'를 위한 시간 확보를 위해 S는 공기업 이직이 아닌 공무원 시험/로또 당첨/교직원 이직 등의 대안들을 선택할 수 있다. 

프랭크퍼트에 다르면 마음 씀의 대상은 그 자체로 목적이 아닌 수단일 수 있다. 반면 '사랑함'은 '마음 씀'의 한 유형이지만 행위자에게 사랑의 대상은 수단일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