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리학

도덕, 가치에 대한 저급한 사고

달빛이내린다 2019. 11. 27. 04:18

세속적인 욕구를 정당화하기 위해, 또는 타인의 고양된 행위를 깎아내리기 위해 어떤 이들은 흔히 다음과 같은 문장들을 사용한다.

a.'모든 사람은 이기적이다', '모든 이는 자기의 행복을 바란다' 등. 

위와 같은 문장들이 그저 사실의 기술을 목적으로 발화된 것이 아니라면,  다음과 같은 주장을 전달하기 위해 사용되기 위함일 것이다.

P. '따라서, 당신의 현재 행위는 충분히 이기적이지 않다.' , '당신의 행위는 당신의 행복을 위한 최선의 전략이 아니다'

그리고 b.와 같은 주장들이 함의하는 바는 결국 다음과 같다.

C '따라서 당신의 행위는 잘못되었다'는 주장이다. 

그런데 이기적이지 않게 행동하는 사람들이 있다. 자신에게 이익이 되지 않을 것을 행위가 무엇인지 알면서도 그것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와 같은 행동을 하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이러한 사실이 맞다면, 이들은 '모든 사람은 이기적이다'는 명제와 양립할 수 없다. 그럼에도, '모든 사람은 이기적이다'는 명제를 고집하고 싶다면, 이기적이지 않게 행동하는 사람들이 자연법칙을 어기고 있다고 주장해야 한다. 

자연법칙을 어기고 있다고 주장하기 싫다면 이기적이지 않은 행위는 도덕적 원칙/규칙을 어기고 있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런데, '모든 사람은 이기적이다'로부터 '모든 사람은 이기적이어야 한다'는 명제는 추론되지 않는다. 전건으로부터 후건이 추론되는 그 어떤 논리규칙도 나는 알지 못한다. 후건의 명제를 주장함에 있어, 전건의 가정 없이 주장하고 싶다면, 그 명제가 왜 우리의 도덕적 원칙이 되어야 하는지 추가적인 근거가 필요하다. 그런데, 동시에 다른 사람들은 '이타적인 행위가 도덕적이다'고 주장할 것이다. 이때 둘 중에 무엇이 더 나은 선택인지 결정할 합리적 기준이 없다.

따라서, '모든 인간은 이기적이다'는 명제와 '사람 x는 이타적이다'는 전제로부터 'x의 행위는 잘못되었다'는 판단이 뒤따라 나오지 않는다. 

행복에 대해서 말하자면, 행복의 종류는 사람마다 다르다. 필자는 만화책을 읽거나 pc게임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것들의 즐거움을 전혀 모른다. 그런데 누군가는 자신의 귀한 주말을 온종일 만화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낸다. 취미는 사람마다 다르고, 삶의 중장기적 행복도 사람마다 다르다. 그리고 굳이 따지자면, 순수예술/수학/철학/도덕적 삶이 다른 활동들보다 더 높은 가치라는 것은 지적하고 싶다. 사람들이 왜 아이돌의 음악보다 클래식에 더 깊은 감동을 느끼는지, 돈벌이 공학기술에 가져다 쓰는 수학공식 암기보다 왜 순수수학 자체를 공부하며 아름다움을 느끼는지, 사람들이 수학이나 과학을 하다가 철학을 하는지, 등에 대해서 따지기 시작하면, 가치들은 위계가 있다는 점을 수용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가치 위계를 근거로 낮은 가치들은 비도덕적이라는 명제가 뒤따라 나오는 것은 아니다.  

타인의 행위는 그 사람의 행복을 위한 최선의 전략이 아니라고 판단하는 것은 주로 모든 (1)사람의 행복의 질이 동일하다고 생각하거나, (2)타인이 추구하는 가치가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보다 덜떨어진다는 생각 하에서 행해진다. 전자의 경우에는 고차적 가치를 향유할 능력 또는 의지가 없기 때문이다. 후자의 경우 본인이 현재 향유하는 가치의 위상은 고려하지 않은 채, 타인의 가치들을 평가하려는 것이다. 실제로 최상위의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들 --예술가, 도덕 실천가, 철학자들--은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에 집중하기 때문에 타인이 추구하는 가치의 위상을 파악하지 않는다. 물론 의식적으로 판단하기는 하겠지만, 그러한 평가는 쓸모없는 일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냥 본인이 추구할 능력이 되는 만큼의 가치를 추구하고, 그 가치들을 잘 따져서 각자 행복한 삶을 계산, 계획하면 되는 것이다. 

따라서, '모든 인간은 이기적이다', '모든 인간은 행복을 추구한다'라는 명제 자체의 진리값 여부와 상관없이, 이 두 명제가 참이라 가정했을 때, 이 두 명제와 독립적인 다른 명제는 뒤따라 나오지 않는다. 즉, 타인의 행위를 평가하거나 특정 행위를 하도록 권고하는 문장들은 앞선 두 명제로부터 추론되지 못한다. 

 

사실, 더 자세히 상황을 분류하고, 그에 따른 엄밀한 논리를 설계하는 것이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