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술어 혀애로서의 여러 존재들 가운데 제1의적 존재는 실체이다. 존재에 대한 우리의 연구는 무엇보다도 실체에 대한 연구이다.
'있다(또는 존재)'라는 말은 많은 뜻을 지닌다. 이는 술어 개념 저마다의 여러 뜻들에 대해 우리가 구별한 대로이다. 즉[1]어떤 뜻에서는 그 사물이 무엇인가, 또는 사물 그 개체를 가리키고, [2]다른 뜻에서는 그 사물이 어떻게 있는가(성질로서의 존재)를, 또는 어느 만큼 있는가(양으로서의 존재)를, 또는 그 밖에 그와 같이 서술되는 사물들을 의미한다. 사물은 이토록 많은 뜻으로서 있다(또는 존재한다)고 일컬어지는데, 이들 여러 뜻 가운데에서 제1의적 존재(즉 가장 참다운 뜻으로 존재한다고 일컬어져야 하는 존재)는, 두말할 필요도 없이 그 사물이 무엇인가를 분명하게 나타내는 존재여야 하며, 이는 바로 실체를 가리킨다.
왜냐하면 예를 들어 우리는 '이것은 어떻한가(성질)'물음을 받았을 때 '좋다' 또는 '나쁘다' 말하지, '길이가 3큐빗'이다 '인간이다'말하지 않지만, 그것이 '무엇인가' 물음을 받았을 때에는 '희다' '뜨겁다' '3큐빗이다' 대답하지 않고 '인간이다' 또는 '신이다' 말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제1의적인 존재가 아닌 사물들이 있다고 불리는 까닭은, 그 사물들이 제1의적 존재(실체)의 양, 그 성질, 그것의 수동태, 그 밖에 그에 대한 어떤 규정들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걷는다', '건강하다', '앉아 있다' 술어들이 과연 '있다(존재)를 뜻하고 있을까'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도 있다. 왜냐하면 이 술어들 저마다는 본디 그 자체로서는 존재하지 않으며, 또 각 실체(기체)로부터 분리되어서는 존재할 수 없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약에 '걷는 것', '앉아 있는 것', '건강한 것' 같은 존재들이 있다면, 이들은 한결 더 뛰어난 존재의 부류에 속하므로 더 뛰어난 존재이다. 이들 저마다의 기체 안에 어떤 일정한 술어의 뜻이 존재하기 때문이다(이것이 그 실체이자 개체이지만). 예를 들어 '좋은 것'이나 '앉아 있는 것' 등은 저마다 그 기체 자체에 뜻을 함축하고 있지 않으면 무의미하다. 그래서 분명히 이 기체가 있으므로, 실체가 아닌 여러 술어 형태 또한 기체의 그 무엇인가가 될 수 있으며, 따라서 제1의적인 존재--즉 무엇인가라고 일컬어진다기보다 그저 있다(존재한다)고만 이르는 존재--는 실체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제1'이라고 하는 데에도 많은 뜻이 있다. 그런 많은 뜻이 있음에도 실체야말로 제1이다. [1]설명 방식(정의)에서나 [2]인식에서나 [3]시간에서도 그러하다. [3]시간에 있어서 다른 술어의 여러 형태는 모두 (실체에서) 떨어져서는 존재할 수 없는데, 이 시간의 실체만은 독자적으로 떨어져서 존재한다. 그러나 [1]설명 방식에서도 이 실체가 제1이다. 왜냐하면 사물의 정의 가운데에는 필연적으로 그 실체에 대한 정의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또 [2]인식에서의 실체는, 우리가 어떤 사물을 가장 잘 알고 있다 생각하는 까닭은 그 사물의 본질적 실체--인간이라면 인간, 불이라면 불의 실체--를 인식했을 경우의 일이다. 그들이 어떻게 있는가(성질), 어느 만큼 있는가(양), 어디에 있는가(장소)를 인식했을 때보다 더 잘 알 수 있다. 왜냐하면 우리가 그 성질이나 양 등을 안다고 말할 수 있는 거 또한, 이 성질이나 양이 (본질적으로) 무엇인가를 안 뒤에야 그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예나 오늘이나 여전히 묻고 탐구하지만 늘 대답하기 어려운 문제인 '존재란 무엇인가'는, 요컨대 '실체란 무엇인가'를 말한다. 이 실체를 어떤 사람들은 '하나'라 말하고, 어떤 사람들은 '하나보다 많이 있다' 말하며, 이 가운데 어떤 사람들은 '한정된 수만큼 있다' 말하면서, 다른 어떤 사람들은 '무한히 많이 있다' 했기 때문에 어렵다. 따라서 우리 또한 이와 같이 존재하는 실체가 무엇인가를 갖아 주된 문제로 삼고, 맨 먼저, 아니 오직 이것만을 연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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