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의 본질에 대한 언어의 형식상/사실상의 고찰. 어떠한 사물에 본질이 속하는가, 즉 본질이 정의될 수 있는 사물은 무엇인가? 그것이 가장 큰 실체이다.
처음에 우리는 실체(라는 말의 적용 범위)를 규정하는 몇 가지 뜻을 구별했다. 그 가운데하나는 사물들 하나하나가 무엇인가를 나타내는 본질이었으므로, 이를 연구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래서 [1]처음에 우리는 이에 대해 언어의 형식 문제를 ㅈ금 말해 두고자 한다. 먼저(1)각 사물이 무엇인가(본질)는 그 사물이 본질적으로 무엇인가를 일컫느다. 당신이 무엇인지와, 당신의 본질은, 당신이 교양적이라는 말이 아니기 때문이다. 즉 당신은ㄴ 당신 자체로 교양적이지 않다. 오히려 당신은 당신 자체로서 그 무엇이며, 이 무엇인가가 바로 당신의 (당신다운 ) 본질이다.
그러나 (2)이와 같이 (자체적으로)일컬어지는 모두가 그 사물의 본질은 아니다. 즉 (a)예를 들어 '표면이 흰색(무색)이다' 말했을때, 그 무엇인가(예를 들어 표현의 흰색 성질)는 그 사물의 본질이 아니다. 왜냐하면 표면의 표면됨(표면의 본질)과 그것이 흰색이라고 하는 본질은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또 (b)이 표면의 본질은 이 둘('흰'과 '표면')의 결합, 즉 '흰 표면'도 아니다. 왜냐하면 정의될 사물의 물질(표면)이 그 설명 방식 안에 더해져 있기 때문이다. 설명 방식이란 정의되어야 할 바로 그 사물이 더해져 있지 않아도 그 사물이 무엇인가라는 본질을 나타내야만 한다. 따라서 만약에 흰색 표면을 매끈한 표면으로 뜻을 바꿔 쓰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표면의 정의가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흰색의 본질이 매끈하다는 본질과 같다고 여기는 셈이다.
또 (3)실체가 아닌 술어 형태의 복합체도 있기 때문에 --즉 성질이나 양, 시간, 장소, 운동(능동, 수동), 그 밖에 이러한 술어들의 여러 형태에 무엇인가가 저마다 기체로서 존재하기 때문에--이와 같은 복합체들이 과연 무엇인지(본질)를 나타내는 설명 방식이 잇는지를, 또 이와 같은 복합체에도 참된 무엇이라고 부를 수 잇는 존재가 포함되어 잇는지 없는지를 연구해야. 예 '피부색이 하얗다'와 '인간'의 복합체인 '피부색이 하얀 인간'에 대해서도 말이다. 여기서 이 복합체, 즉 '피부색이 하얀 인간'을 한마디로 '겉옷'이라 부르기로 하자. 그리고 이 옷의 본질은 무엇인지를 물어보자. 그러나 (어떤 논자는) 이 또한 그 자체가 옷이라고 일컬엊리 수는 없다(따라서 이 '옷'의 본질은 존재치 않는다고 말할지도).
하지만 '그 자체가 옷일 수는 없다' 말할 때도 두 경우로 나누어진다. 즉 그 하나는 다른 여분에 대한 규정이 포함되어 있으며, 다른 하나는 그 반대의 경우이다. 전자는, 정의되어야 할 사물에 다른 규정이 여분으로 정의되어 있을 때, 예를 들어 '하얀 피부'의 본질을 정의하려는 사람이 '피부색이 하얀 사람'의 설명 방식을 드는 경우이다(이 경우에는 '인간'이라고 하는 규정이 여분으로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이 '인간'은 '하얀 피부' 자체인 존재와는 다른 무엇). 그런데 후자는, 사물 안에 그 설명 방식이라고 뚜렷이 말할 수 없는 규정이 포함되느 경우로, 예를 들어 '옷'을 보고 '피부색이 하얀 인간'이라고 했을 때 누군가가 이 '옷'ㅇ르 그저 '피부색이 하얗다' 이렇게만 정의하는 경우이다. 피부색이 하얀 사람은 피부가 하얗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피부색이 하얀 사람', 즉 옷의 본질ㅇ르 '하얀 피부'의 본질이라고 할 수 없다(따라서 '피부색이 하얗다'는 정의만으로는 '옷' 자체가 표현될 수는 없다).
(...)
그렇지 않다면 이 '정의'라는 말에도 '그것이 무엇인가(본질)'처럼, 많은 뜻을 담고 있지는 않을까? '무엇인가'라는 말도 한편으로는 실체, 즉 이것이라고 가리킬 수 있는 개체를 의미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이에 대해 서술되는 존재의 온갖 형태, 예를 들어 그것이 '얼마나 잇는가(양)', '어떻게 이루어져 있는가(성질)' , 그밖에 그와 같은 속성들을 의미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러나 이 경우, 명백한 뜻으로서가 아니다. ...사물의 성질 또한 한정된 의미에서 그렇게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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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실재적) 사실을 연구하려고 하는 경우에는, 어느 쪽 뜻으로 '있다'말하든 그것은 상관없는 일이다. 이것만은 분명하다. 즉 제1의적이고 뚜렷한 의미로서의 정의와 본질은 실체에 속하며, 그 밖의 서술적 여러 존재에도 ㅈ어의와 본질은 속한다. 단, 그것은 제1의적 뜻이 아닌 경우에서이다. 왜냐하면 비록 이 서술적 존재들에게도 정의나 본질이 속할 수 있도록 허용하더라도, 이로 말미암아 반드시 그 설명 방식과 같은 뜻인 그 이름마다 모두 (제1의) 정의가 있다는 (불합리한) 결론이 나올 수 있는 없기 때문이다. 다만 그 설명 방식이 어떤 일정한 조건ㅇ르 갖추고 있다면, 서술적 존재에도 제1의적 뜻이 속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조건이란 그 설명 방식이 어떤 '하나의 것'에 의해 충족된다는 말이다. 이 하나란, 예를 들어 서사시 <일리아드>는 그 전체 내용의 단순한 연속 때문에 하나의 이름으로써 이루어진 표현은 아니고, 또 단순한 집합 때문에 하나도 아니며, 오히려 '하나'라는 말이 '존재'의 뜻만큼 많이 지니는그 여러 뜻들 가운데 어느 것 하나에 의해서 하나라고 일컬어짐을 말한다.
그런데 '있다'(또는 '존재')란, 어떤 경우에는 '이것'이라 지시할 수 있는 개체를 의미하고, 어떤 경우에는 어느 만큼 있는가, 어떻게 있는가 하는, 양이나 성질이 '잇는'을 의미한다. 그렇기 때문에 (3)'피부가 하얀 사람'에도 그 어떤 규정이나 정의(뜻)가 있다. 그러나 이 경우는 '하얗다'는 성질적 존재와 '인간'이라는 실체에 대한 정의가 존재하다는 것과는 다른 별개의 방식으로 또 하나의 뜻을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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