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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리학

‘미러링’, ‘강남역 살인사건’이 비도덕적인 이유

첫째, ‘강남역 살인사건’이 나쁜 이유는 이것이 여성혐오적 범죄이기 때문이 아니라, 피해망상자의 비도덕적 행위이기 때문이다. 둘째, 소위 ‘미러링’이라 부르는 행위는 도덕적으로 그른 행위이다. 

필자는 ‘미러링’과 ‘강남역 살인사건’이 똑같은 이유에서 비도덕적 행위라는 것을 각각 §1§2에서 주장할 것이다. 이러한 도덕판단은 ‘여성혐오’나 ‘남성혐오’ 따위의 개념을 제거하여도 여전히 성립하며, 이것을 가능케 하는 도덕철학을 §3에서 제시할 것이다.


§1 
‘강남역 살인사건’을 ‘여성혐오’ 범죄라고 해선 안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a) ‘강남역 살인사건은 여성혐오이다’는 주장에 대하여 동시에 ‘강남역 살인사건의 ​동기는 남성혐오다’는 주장이 가능하다.
그런데 우리는 (a)의 두 주장 중 무엇이 더 나은 주장인지 고를 수 있는 객관적 근거를 찾을 수 없다. 왜냐하면 우리는 ‘와 씨x 무차별적으로 여성만 골라서 폭력을 가했다는거야? 여성이라는 속성을 지닌게 무슨 죄라고?’라 느낀다는 점에서 그것은 여성혐오적 범죄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가해자는 여성들에게 무시당하고 차별당했다고 주장한다. 이것이 맞다면, 우리는 ‘뭐? 여성만 골라 범죄를 저지른 이유가 있었군. 물론 범죄를 저지른 것은 엄격히 잘못이며 그를 감옥에 쳐넣어야 겠지만 얼굴이 못생겼거나 능력이 없다는 이유 때문에 여성들에게 무시당하고 차별당하는 문화는 잘못되었어’라고 느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단언컨대, ‘남성 혐오’든 ‘여성혐오’든 모두 감정에 호소하는 개념들이며 둘 다 동등한 수준으로 우리들을 ‘성대결’로 몰아넣을 뿐이다.
강남역 살인사건이 비도덕적인 진짜 이유는 가해자가 자신에게 피해의식을 야기한 여성들과는 전혀 무관한 여성들에게 그러한 피해의식을 되갚아 주었기 때문이다.

§2
‘미러링’ 역시 비도덕적이다. 누군가는 ‘미러링’이 남성들의 ‘여성혐오’를 따라하는 일이기 때문에 정당하다고 주장한다.
(a’) ‘미러링이 남성혐오이다’는 주장에 대하여 동시에 ‘미러링의 동기는 여성혐오이다’는 주장 역시 가능하다.
우리는 (a)에서와 마찬가지로 (a’)에서도 두 주장 중 무엇이 더 나은 주장인지 고를 수 있는 객관적 기준이 없다. 즉, 우리는 ‘와, 남성을 성적으로 희화화하다니 너무하는군’이라 느끼는 동시에 ‘남성만 골라 욕하고 성적으로 희화화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군. 피해의식이 있었던거야. 물론 남성혐오가 비도덕적이지만 그러한 행위의 동기가 된 여성혐오적 문화는 잘못되었어’라고 느낄 수 있다.
‘미러링’이 비도덕적인 진짜 이유는 강남역 살인사건이 비도덕적 행위인 이유와 완전히 동일하다. 즉, 가해자들은 자신들에게 피해의식을 야기한 남성들과는 전혀 무관한 남성들에게 그러한 피해의식을 되갚아 주었기 때문이다.

§3
필자는 ‘강남역 살인사건’과 ‘미러링’의 동기와 비도덕성의 근거를 분석하면서 논리적 일관성을 유지했다. 이것은 도덕의 ‘보편화 가능성’에 있어 논리적 측면의 보편화 가능성이다.

원칙1 어떤 사람 a에 의해 피해의식을 느낀 임의의 사람 x는, 자신의 피해의식에 대하여 임의의 y에게 그 죗값을 물어선 안된다. (a ≠y)

즉, 필자는 원칙1을 대상에 대한 필자의 기호와 상관없이 일관되게 적용했다. 임의의 행위의 도덕성 유무는 그 행위가 어떤 일관된 도덕 시스템을 지켰냐 안 지켰냐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지, 그 행위의 행위자에 대한 필자의 감정적 이해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ㅠㅠ 얼마나 남성들에게 당했으면 저래 ㅠ’ 와 같이 행위자에 대한 감정적 공감 유무는 그 행위의 도덕성과 완전히 독립적이다)
필자는 한국사회에서 ‘여성혐오적 행위’ 또는 ‘남성혐오적 행위’가 없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하나의 현상/행위에서 그 두 관점 모두가 양립 가능할 때 한쪽 편을 들어줘야 할 이유는 전혀 없다. 또한 (특히) 페미니즘 쪽에서 임의의 현상/행위들 전반을 ‘여성혐오’, ‘여성 억압’ 등으로 설명해버리려고 하는데 이것은 검증가능성도, 반증가능성도 없다. 물론 누군가는 '검증가능성'/'반증가능성' 자체의 정당성 유무가 문제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원칙1과 같은 상식으로 여러 도덕 문제들을 파악할 수 있다면, 굳이 '남성 혐오'나 '여성 혐오'와 같은 추가적인 개념/이론의 도입은 비경제적인 멍청한 일인 것 같다. 필자는 우리가 이미 원칙1을 상식으로 믿는다고 생각한다. 또한 원칙1은 주어와 목적어를 변항 x, y로 형식화함으로써, '남성혐오'/'여성혐오'보다 훨씬 적용범위가 넓다. 
우리가 편들어야 하는건 특정 대상/집단이 아니라 하나의 도덕 형식이다. 궁극적인/절대적인 도덕 원칙이 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위에서 제시한 원칙1 따위의 것들은 언제나 조정 가능하다. 문제는 선정된 도덕원칙을 얼마나 일관되게 (마치 공리axioms인 것처럼) 적용하는가이다.

물론 도덕원칙에 있어 '여자', '남자'와 같이 특정 대상을 가리키는 용어는 허용할 수 없다. x, y 등의 변항만을 가질 수 있다. 이러한 규정은 도덕의 공리적axiomatic 수준에 있어 최소한의 보편화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함이다. 궁극적 도덕원칙을 제시하는 일, 즉 공리적 단계에서 절대적인 도덕원칙을 찾아내는 일은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지만, 예비적 도덕원칙들을 형식화하는 일은 우리의 능력 안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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